정상이 어드메뇨! - 4편
2015
Denali-Rainier EXPEDITION 보고서
1.원정개요
■ 원정대명_ 2015, PAC Denali-Rainier 원정대
(Pocket Alpine club)
■ 대상산_ 북아메리카 데날리국립공원 Denali 6.194m - Rainier 4.394m
■ 원정기간_ 2015년5월18일부터 6월11일까지 25일간
■ 원정대장_ 강정국
■ 원정대원_ 김현주.이미재부부.이병춘.임정희
■ 등반루트/방식_ West Buttress,세미Alpine등반
■ 원정목적_ 고산등반 전무한 줌마3명과 산악스키 등반병행
■ 원정결과_ 강정국대장 데날리봉 산악스키등정
김현주,이미재,국내최초 데날리봉 부부동시등정.
이병춘,임정희,전대원 등정성공
5월25일-등반5일차
PAC원정대는 30kg썰매를 끌고 악명높은 윈디코너를 통과하여 크고 작은 크레바스를 넘고 넘어 약50도 경사지인 모터싸이클을 올라 5일만에 데날리씨티에 안착을 하였다.
데날리씨티의 각국원정대
데날리씨티 레인저텐트
간단히 치료할수있는 의료약품과 등반에 필요한 정보,일기예보를 공시하고 있다.
강풍에 대비하여 눈블럭을 1m 이상을 쌓아야만 텐트파손을 막을수 있으므로 전대원이 협심하여
정비를 하고있다.
이렇게 높이 쌓아도 제멋대로 휘어청거리며 마치사람이 떠다미는 것처럼 텐트를 밀어젖히곤 한다.
데날리 등반에 있어서 개인등반장비일체는 물론 ,스노우슈즈,크램폰,피켈,눈삽,눈톱등은 필수적인 장비이다.
8인용 식당텐트가 눈블럭에 가려 상단만 보이고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불때엔 파손을 막기위해 접어두어야만 한다.
5월27일-등반7일차
오전07시 기상하여 아침을먹고 대원들과 미팅을 하였다
오늘 일정은 헤드월 상단(4970m)까지 고소적응과 식량을 저장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헤드월을 오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단부를 지나 상단부에는 고정로프가 설치되어 있으며 각각 오르고 내려오는 로프가 한동씩 있으나
중간중간마다 픽스되어 있으므로 시간이 매우 정체 되곤 한다.
우리는 헤드월구간만 오르는데 4시간이 소요되었다.
헤드월 상단에 식량과 장비를 눈속에 묻어놓기 위해 운반을 하고있는 본인
앉아 있는 대원은 나의 안전을 위해 로프로 확보를 보아주고 있는 중이다.
위) 헤드월 하단에서 바라본 데날리씨티
썰매는 캠프4지점인 데날리 씨티까지만 운행하고 이제부터는 모든장비와 식량을 배낭에 짊어지고 가야한다.
물론 똥통도 필수항목으로 지고가야 되구요.
아래) 각국의 등반대가 헤드월을 향해 운행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정상을 가기위해 헤드월에 미리 저장해두었던 식량과 3인용텐트1동,침낭3개로 5명의 대원이
캠프5로 숨을 헐떡이며 라이프릿지를 오르고 또올랐다.
우리팀 바로 앞으로 캘리포니아에서 온 미국대와 그앞으로 독일대가 캠프5를 향해 운행을 하고있다.
저언덕만 넘으면 캠프5가 나오겠지 하며 운행을 하지만 넘고나면 그앞으로 봉우리가 또나타나자
기진맥진 하였다.
바로 앞에 나와 생명줄을 같이 걸고 운행하는 배우자
짊어진 배낭과 산소 부족으로 힘들어 하지만 딱히 무얼 해줄수 있는것이 없다.
그저 힘내라는 단 한마디 밖에....
라이프릿지에서 당겨본 캠프4와 크레바스
마치 한적한 동화속의 나라같지 않나요?
우리는09시20분 출발하여 18시30분 9시간 운행만에 캠프5. 5250m(데날리빌리지) 도착을 하였다.
사진아래의 작은텐트 속에서 5명의 대원이 식사를 해먹고 침낭3개로 2틀밤을 지새야만 정상공격을 마치고
하산을 할수있는 여건이다.
올라오면서 미끄러져 넘어진 대원의 체력과 컨디션이 문제였다
일단 잠을자고 정상공격이 가능한지 아님 캠프에 남아 있던지 아침에 결정하기로 하고 몸을 이리저리구겨넣고 잠을 청한다.
5월30일-등반10일차
*정상공격일
05시30분 기상
07시30분 조식/짬뽕밥
09시10분 캠프5 대원전원 출발
데날리패스를 넘어라!!
데날리패스의 경사도는 약55도 정도의 기나긴 사선등반루트이다
확보물 설치가 되어있는 구간도 있고 확보물이 없는 등로엔 각팀이 스노우바를 설치하여 올라야 한다
우리팀은 이구간을 통과하는 데만 4시간20분이 소요되었다
이구간은 오전10시쯤이나 햇살이 비추므로 매우춥고 바람이 강하다 .
아래사진) 정상공격 출발준비하는 이탈리아 원정대
15시30분 풋볼힐 도착
우리는 여자대원의 배낭을 데포시켜놓고 남자대원들만 배낭을 짊어지고 운행하기로 한다.
풋볼필드에서 약1시간 정도를 오르면 왼쪽으로 스노우 칼날능선이 보이고 상당한 고도감으로 아찔함과
위압감으로 몸이 움츠러진다.
더군다나 이구간은 픽스로프도 깔려있지 않았다.
거센 바람으로 고개를 들기도 힘든 가운데 나는 내몸이 공중으로 부웅뜨는 느낌과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깜빡 졸았던 것이다.
위험천만한곳의 라이프릿지 능선에서 졸았던 나는 천길낭떨어지기를 보는순간 머리가 쭛볕솟음과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확끼쳐왔다.
오후 시간으로 접어들면서 데날리봉 정상에는 설현이 날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반듯이 이구간을 통과 해야만 정상에 도달할수 있을것이다
또한 정상등정을 마친 후에도 라이프릿지의 위험구간을 다시 통과해야 캠프5로 돌아갈수가 있는것이다
하지만 여자대원들의 발걸음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등뒤에다 고래고래 조심조심!!
확보해!!라고 소리질러 보지만 칼바람이 할퀴고 갈뿐 앞선 등반자는 들리는지 안들리는지 엉거주춤한 자세만 보일뿐이다.
나역시도 체력소모가 저하되고 매서운 바람을 막아보려려 한층 고개를 숙이며 운행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를 갔을까 둥근 언덕밑으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알래스카 산군이 한걸음 한걸음 옮길때마다 시야에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그토록 힘겨웠던 등반도 정상에서 바라보는 데날리 국립공원의 설산과 알래스카 파노라마는 장엄함과
황홀경에 충분히 빠져들 정도였다.
한마디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beautiful beautiful very very beautiful !!!
우리는 남자대원도 힘들어하는 육중한 썰매와 윈디코너의 칼바람과 맞서 싸우며 크고작은 크레바스를 건너
등반10일만에 남자대원2명이 여자대원 3명을 이끌고 다함께 정상에서 활짝 웃을수 있었다.
그기쁨과 환희도 잠시
시간이 흐를수록 바람은 더욱더 거세어져만 갔다
북극점이 320km 밖에 떨어져 있지않아 6.194m에서 맞는 바람은 실로 어마어마 하였다
볼살이 애려와 따끔거리다 못해 째는듯한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하산길이 걱정이 앞선다
고산등반시 대부분의 사고가 하산길에 발생하고있다
체력저하와 하체에 힘이빠지면서 크램폰이 서로끼게 되면 어소리도 못하고 고꾸라져 추락을 하기때문이다
우리는 칼날능선 통과와 데날리패스의 기나긴 픽스구간을 안자일렌(로프로 등반자끼리 묶는)과 확보를
하며 추락없이 졸지않고 무사히 캠프5로 돌아갈수 있을까?
어찌하든 촌각을 다투어 하산을 서둘러야한다.
6.194m 북아메리카 최고봉 데날리봉 정상!!
여기가 정상이렸다!
2015년5월30일 17시33분(현지시간)
김현주/블랙야크 사다셰르파
김현주-이미재/국내최초 데날리봉 부부동시등정
강정국/국내최초 데날리봉 산악스키 등정
23시10분 캠프5 도착
05시30분 기상하여 준비하고 14시간만에 정상공격을 마치고 우리는 기진맥진 돌아왔다.
데날리패스의 급경사지대인 사선루트를 지나 안전지대에 들어서자 여자대원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모두 철푸덕 주저앉앚고 남자대원둘은 먼저 내려가 물끓이고 식사 준비를위해 계속 전진하였다.
24시30분
스프를 끓여 허기를 달래는데 두어명의 대원은 그마저도 먹을 힘도 없다며 일어나질 못한다.
억지로 일으켜 두어모금을 먹인뒤 대충 장비정리를 마치고 고단한 몸을 뉘어본다.
5월31일-등반11일차
캠프5~캠프4 하산
계획상으로는 캠프3까지 하산 일정 이었으나 급기야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여성대원1명이 대퇴부 경련이 일어나 발걸음을 떼어놓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됐다.
부상대원의 짐을 서로 나누어지며 4시간 운행끝에 캠프4에 머무르기로 한다.
즉시 부상대원을 데리고 레인저 사무실을 들렀으나 다운하여 약처방을 하라는 내용뿐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했다.
우리는 무어라 할수도 없이 되돌리는 발걸음이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6월1일-등반12일차
캠프4~랜딩포인트
데날리씨티의 텐트와 식당텐트 모든장비를 수거하여 썰매에 체결을 하고 13시10분 철수를 하였다
거동이 불편한 대원을 빈몸으로 운행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로인한 썰매의 무게와 부피가 커지다보니 수십번에 걸쳐 썰매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됐다.
썰매를 하네스 안전고리에 묶고 또다른 로프로 서로몸을 묶는 안자일렌 등반을 채택 했기 때문 썰매하나만 전복되면 모든대원이 꼼짝 못하고 서있는 운행이 반복되었다.
그나마도 다행인듯 했지만 모털싸이클 비탈길을 우여곡절끝에 내려오고 다람지힐에 도달하자마자
한대원이 휘청넘어지면서 썰매의 무게와 함께 전대원이 휩쓸려 내려가는 대형사고가 발생됐다.
나는 급한 나머지 끌려내려가면서도
피켈로 찍어!
피켈찍어!!
피켈찍어!!!
악을 쓰다시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역시도 일곱 여덜번의 피켈을 찍은 다음에야 겨우 제동이 되어
멈출수 있었다.
때마침 홀로 등반하던 오스트리아 산악인이 위기에 처해있는 우리를 도와주었다.
하마터면 큰사고로 이어질뻔한 매우 위험한 순간 이었다.
캠프1을 지나가는 우릴보고 써밋을 했냐고 물어오는 외국원정대에게 그렇다 하자 여자 대원도 모두다 등정했냐고 재차 물어보곤 아낌없는 축하를 해주었다.
우리는 밤새내리는 눈을 맞으며 6월2일 04시20분 랜딩포인트에 15시간10분만에 초죽음 상태로 전대원이
도착을 하였다
몸은 천근만근 되어 돌아왔지만 대원들의 표정은 한없이 기쁨에 가득차있었다
위) 1953년 낭가파르밧 최초등정자인 헤르만불이 정상등정을 마치고 돌아온 모습
아래) 면도는 대충했지만 내모습도 상노숙자와 별반 없습니다 ㅋ
떡진 머리칼과 입술은 부르터지고 자외선과 바람으로 피부는 벗겨져 꼴이 말이 아닙니다
이런 모습이 저에게는 연례적이니 남들이 무어라하든 그런가보다 합니다.
새벽에 도착한 우리는 아침이면 경비행기를 타고 탈키트나로 빠져나갈 기쁨에 젖어 랜딩포인트에 묻어둔 고기와 소주. 맥주로 축배를하며 등정이야기로 아침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그 어느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엄청난 사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랜딩포인트를 탈출하라! 편을 연재 합니다.